


그럼에도 나는
처음부터 내가 가장 중요했던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능력을 거두었다. 식물들이 빠른 속도로 매말라가는 게 눈에 보였다. 사람들은 내게 무슨 일이냐며 따졌지만, 대답할 여력도 없었다. 나는 그들 얼굴 하나 하나를 눈에 담았다.
“이 곳은 끝났습니다. 모두 능력껏 대피하세요. 더 이상 지켜드릴 수 없어 미안합니다.”
“그게 무슨?”
“헌터님이 아니면 우린 다 죽어요!”
“우리 아이, 아이만이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 제발요.”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게 너무 괴로웠다. 울분에 차 내게 욕을 하는 자도 더러 있었다. 몇몇은 오래 전부터 지금의 상황을 예상했는지 포기한 표정이었다. 미약하게나마 능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슬쩍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나와 같은 결심을 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몇 명일지도 모르는 그들을 모두 한 번씩 보고 나서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방주의 깊은 곳으로 향했다. 희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들이 내 뒤를 따라왔다. 그러나 끊임없이 걷는 내 체력을 따라오지 못해, 몇 시간도 되지 않아 나는 태초에 그랬던 것처럼 혼자 걷고 있었다.
어느새 열기가 방주 안쪽까지 선명하게 느껴졌다. 추위도 더위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내 육체가 확실하게 위험하다고 감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주의 외피는 이미 녹아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나를 따라오던 사람들도 이미 화마에 잡아먹혔겠지. 나는 더욱 안쪽으로 들어가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기계실에 자리 잡았다. 연결된 선에 손상이 있었는지 기계실의 기계들은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고보면, 어느 순간 전기도 끊긴 것 같았다.
나는 구석에 웅크렸다.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었던 일에 자괴감과 허무함이 몰아쳤다. 겨우 이렇게 죽으려고 나는 이제까지 아등바등 살았던 걸까?
내 주변에서 내 우울함을 잔뜩 머금은 식물들이 피어나 나를 감쌌다. 줄기가 내 몸을 휘감고 그 사이로 새로운 새싹이 돋고, 순식간에 다 자란 식물은 새로운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흙 한 줌도 없는 땅에서 씨앗은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다시 태어난다. 그렇게 끊임없이 성장한 식물들은 마치 하나의 식물처럼 서로 얽히고설켜 하나의 나무로 느껴졌다. 기계실에 자리 잡을 때까지도 피부로 와닿았던 열기는 더 이상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나는 식물로 만든 요람에서 오래도록 내 소중한 추억들을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