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에도
내 사랑은 멈추지 않고
불타오를 것이다
이제 남은 건 내 모든 것 뿐. 나는 그들을 향해 웃어주었다.
“안쪽으로 들어가계세요. 이 곳은 곧 위험해질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위, 위험해진다니요.”
사람들은 내 말에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도 제대로 살았다고 칭할 순 없는 상태였으나 죽어있는 것보단 나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들의 불안감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오진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기보단 최대한 오래 살아남게끔 도와주는 게 최선이겠지.
“말 그대로입니다. 이쪽 벽은 이제 곧 한계를 맞이할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여러분들을 포기할 일은 없겠으나, 여러분, 제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안전한 곳에 몸을 숨기고 계세요.”
나는 그들에게 단단히 언질을 주고 안쪽으로 이동시켰다. 사람들은 동요를 드러내면서도 내 말을 고분고분하게 따라줬다. 이 곳에 남은 최상위 각성자가 나밖에 없음을 그들도 알고 있으리라. 사람들이 모두 안쪽으로 이동한 걸 확인하고, 남은 인원이 없나 꼼꼼하게 체크한 뒤에야 나는 뚫린 방공호 주변에 손을 댔다.
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벽 일부가 박살났다. 박살난 문을 얽고 있는 건 줄기가 사람 팔뚝 만한 장미덤불이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크기의 구멍에서는 열기가 훅 밀려들어왔다. 장미덤불이 키워낸 보람도 없이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졌다. 나는 그 속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열기에 피부가 녹을 것만 같았다. 방공호가 지금까지 버텨준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라는 듯, 넘실대는 불꽃이 나를 삼키려 들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씨앗을 모두 내 입안에 털어넣었다. 이 방법은 처음 능력을 연구했을 때부터 염두에 두었으나 절대로 쓰고 싶지 않았던 방법이었다. 같이 연구하던 동료가 절대 이 연구는 진척시키지도 말고, 시도할 생각도 하지 말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이젠 듣지도 못할 사람에게 그때 하지 못했던 대답을 혼자 중얼거렸다.
“어떡하겠습니까. 연구원이라면, 결과 정도는 보고 싶은걸요.”
자조적으로 웃으며 한 손을 가슴에 얹고 불꽃속으로 몸을 내던졌다. 살갗이 순식간에 타는 느낌이 선명했다. 정신을 잃을 뻔한 고통 속에서도 나는 겨우겨우 마지막 힘을 짜냈다. 내 생명력을 양분삼아 발아하는 씨앗들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었다. 그리하여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단 한 그루의 나무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커헉-”
내 몸에 땅에 닿았다. 열기로 인해 갈라진 메마른 땅이었다. 다리는 골절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아무 힘도 들어가지 않는 몸을 겨우 일으켜 방공호 외벽에 기대 앉았다.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처럼 등이 뜨거웠다. 나는 손만 겨우 뻗어 입밖으로 울컥울컥 토해내는 핏물을 소매로 훔쳤다.
밖에서는 살을 태우는 고통이, 안에서는 생살을 찢는 고통이 느껴졌다.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너무 아파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생명을 놓지 않았다. 내 숨이 꺼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많이, 곧 자라날 나무에 담아야했다. 지독한 열기에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나는 흐릿해져가는 시야 사이로 나를 감싸는 나무줄기를 바라봤다. 이게,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나는 눈을 감았다.
내 귓가에서 시스템 알림음이 들리는 줄도 모르고.